정만기 전 차관 “매년 20조 R&D 지원 밑빠진 독 물붓기”

-정부는 왜 손을 놓고 있나?

=노무현 대통령 때 연구개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신설하는 등 노력했지만 실패했다. 또 내가 산업부 산업기반실장 시절 출연연구소를 프라운호퍼처럼 개편하는 방안을 마련해 관계부처 회의도 하고 공청회도 열었다. 결국 20~30년에 걸쳐 출연연구소의 예산 중 3분의 1을 민간 위탁사업 수행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마련됐으나, 흐지부지됐다.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.

-역대 정부 모두 중소기업 살리기와 소재·부품 국산화를 강조했는데?

=정권이나 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연구개발 역점사업이 바뀐다. 연구개발 과제는 1년짜리도 있지만 2~3년, 심지어 5년짜리도 있다. 그런데 중간에 ‘연구개발사업 구조조정’이라는 명분으로 기존 과제의 예산을 줄이거나 없애는 일을 반복한다. 다리를 짓다가 중간에 그만두고, 옆에 다시 다리를 놓는 꼴이다. 내가 재직 중에도 여러번 겪었다.

-소재·부품의 ‘탈일본’에 성공하려면 민간분야 연구개발도 중요하다. 중소기업이 연구개발 역량을 제대로 갖추려면,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, 기술탈취와 같은 불공정거래부터 근절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.

정부가 연구개발(R&D)에 매년 20조원의 예산을 지원하는데도 여전히 일본에 핵심 부품·소재를 의존하는 것은 연구개발 투자의 생산성이 낮아 ‘밑빠진 독에 물붓기’에 그치기 때문입니다.”

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핵심 소재·부품의 국산화 등 ‘탈일본’ 종합대책을 서두르는 것과 관련해 연구개발 지원방식을 개선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. 정 회장은 개선방안으로 정부 직접 지원 방식 대신 기업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하고, 정부 지원금의 절반을 차지하는 출연연구소·국공립연구소를 민간과제 수행 중심으로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.

정 회장은 산업부 차관 출신이다. 산업정책·통상·무역 업무를 두루 맡았고,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비서관도 지냈다. 그의 말에는 정부 연구개발 투자를 수행하는 주무부처 최고위급 인사의 솔직한 고백과 반성이 담겨 있어 주목된다. <한겨레>는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그를 만났고, 26·27일 전화로 추가취재했다.

-시장경제에서 연구개발은 기업 등 민간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. 정부가 연구개발에 예산을 지원하는 이유는? (2017년 기준 민간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59조원인데,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도 19조4천억원에 달한다)

=연구개발 활동은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. 한 기업이 연구개발에 성공하면 그 효과가 다른 기업으로 전파된다. 하지만 기업으로서는 투자를 해도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. 설령 성공해도 기술유출 등의 위험성도 있다. 이 때문에 연구개발은 사회적 필요 수준에 비해 항상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. 이런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.

-정부가 부품·소재 국산화에 나선 것은 언제부터인가?

=1970년대 전자·자동차·조선 등 조립가공 산업이 본격화하면서 국산화 필요성이 제기됐다.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고, 1990년대부터 확대됐다.

-길게는 50년, 짧게 봐도 40년 동안 정부 예산을 연구개발에 투입한 셈인데.

=그동안 지원액을 모두 합하면 엄청난 규모일 것이다. 2013~2017년 5년 동안만 91조9천억원에 달한다.

-그렇게 오랫동안, 막대한 지원이 이뤄졌는데도 핵심 소재·부품을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는 이유는?

=한국의 지디피(GDP)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세계 1위다. (2017년 기준 4.6%로 일본 3.2%, 독일 3%, 미국 2.8%보다 높다) 절대 규모에서도 세계 5위다. 하지만 질적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. 연구개발의 생산성이 떨어진다. 예산을 쏟아붓지만, 실질적인 연구개발을 못하고, 구체적인 시장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.
 

http://www.hani.co.kr/arti/economy/economy_general/903604.html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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등록일2019-07-29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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